[전복마을] 홍어·가오리·간재미요리

흑산도에 돌아온 전설, 홍어

샘쇼핑●전복마을 2006. 11. 2. 20:05
흑산도에 돌아온 전설, 홍어
‘흑산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홍어!
그동안 가뭄에 콩나듯 잡히던 홍어가 대풍(大豊)이라는데…. 그 배경과 흑산도 어업인들의 홍어잡이 풍경, 그리고 홍어를 두 배로 즐기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상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돌아온 흑산도 진객(珍客), 홍어
홍어가 유례없이 풍어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에 찾아간 흑산도. 목포에서 쾌속선에 몸을 싣고 두 시간 정도 바닷길을 달려 도착한 흑산도는 기대와는 달리 조금은 한산한 모습이다. 내심 ‘뭔가’를 기대했던 내 자신이 되레 머쓱해지는 기분이다.

홍어잡이 어선들은 쾌속선이 드나드는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예리항에 정박해 있었다. 이틀 전 입항한 여덟 대의 홍어잡이 배가 다음 출항을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흑산도에는 모두 아홉 척의 홍어잡이 배가 있는데, 아직 한 척은 입항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예리항에서 만난 김상열(61) 씨는 홍어잡이 경력 35년의 베테랑 선주. 그의 배에선 이미 다음 출항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조타실의 방향타를 점검하고 ‘걸낚’이라고 불리는 홍어잡이 어구들도 꼼꼼히 정비한다. 걸낚은 주낙의 일종이지만 일반 주낙과는 달리 낚시바늘에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홍어잡이에 있어 제일 중요한 도구는 역시 걸낚. 그렇다 보니 이를 손질하는 선원들의 손길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바다사내 두 명이 갑판 위에 앉아 ‘고리’라고 불리는 바구니에 바늘을 꿰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고리 하나에 400개의 바늘을 촘촘히 꿰어야 하는 작업은 두 세 명의 선원이 온전히 한나절은 붙어 있어야 할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
홍어를 잡는 모습

홍어낚시는 이렇게 만든 걸낚을 어장에 설치하고 설치한 걸낚을 다시 걷어 들이는 작업의 연속이다. 출항할 때마다 미리 설치한 500개의 고리를 거두고 또 그 자리에 새로운 고리 500개를 설치한다. 이 작업만으로도 꼬박 5일이 걸리지만 그래도 요즘만 같으면 힘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김상열 씨는 ‘35년 동안 홍어를 잡아왔지만 올해 같은 풍어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입항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가 출항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제? 한 100마리 정도 잡았능가. 그래도 아직 멀었제. 예년에야 100마리만 잡아도 대박이었지만 요즘에는 150마리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응게. 여 앞바다에 한번 나가 보드라고. 홍어가 말 그대로 줄줄이 사탕이랑께.”
실제로 흑산도 수협에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 1월과 2월에만 홍어 150마리 이상(위판고 2000만 원 이상)을 잡은 어선은 일곱 차례나 된다. 거기에 작년까지 최고 어획량으로 기록됐던 150마리도 최근 262마리로 껑충 뛰었다.  

해경의 중국어선 단속 강화에 홍어‘풍년’
올해 흑산도에서 홍어가 풍어를 이루게 된 이유에 대해 대부분의 선주들은 해경의 불법어선단속 강화를 첫손으로 꼽았다. 특히 해경이 인근 해역까지 드나들며 어장까지 망치는 중국어선을 강력히 단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반기는 표정이다.
  
흑산도 수협 박선순 과장은 “중국어선들은 저인망으로 바다 밑 홍어를 싹쓸이할 뿐 아니라 어구까지 함께 걷어 가기 때문에 어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중국어선의 횡포가 어찌나 심한지 어장을 표시하기 위해 띄우는 부표를 띄우지 못하고 조업을 나가는 어민도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상열 선장 역시 “중국어선한테 몇 번이고 어구를 빼앗긴 적이 있다”고 말문을 연다. 한번은 너무 억울한 마음에 직접 중국어선을 쫓아가 잡은 적도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기도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일이었지만 1000여 만 원에 이르는 어구들이 망가진 것을 본 순간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다행히 해경이 언능 출동해 줘서 아무런 불상사 없이 중국어선을 잡을 수 있었지만서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다 저리당께요.”  
이처럼 흑산도 어업인들은 중국의 ‘중’자만 꺼내도 손사래부터 친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선에 대해 특히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해경에 대한 어업인들의 신뢰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정도다.

흑산도 사람은 삭힌 홍어 안 먹는다(?)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안 먹지라. 생각해 보드라고. 왜 싱싱한 놈 놔두고 삭힌 놈을 먹겄소. 삭힌 게 별미긴 하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싱싱한 회를 더 좋아한당께요.”
이게 뭔 소린가! 흑산도 예리항에서만 40년 넘게 홍어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금순 할머니의 말이라지만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삭혀 먹는 생선으로 유명한 홍어, 그리고 그 홍어의 주산지 흑산도. 그런데 막상 홍어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안 먹는다니….

속내는 이렇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대략 90km. 요즘에야 쾌속선으로 2시간 정도면 뭍에 닿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반 여객선만이 목포와 흑산도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하물며 그 이전에는, 아마도 며칠이 걸렸을 수도, 아니 기상상태에 따라 그 이상이 걸렸을 수도 있었을 터다. 그렇게 흑산도에서 많은 해물들은 별다른 냉동시설없이 며칠에 걸쳐 뭍으로 날라졌고 그 와중에, 홍어는 상해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흑산도에서는 날로 먹고, 목포에서는 반 숙성된 것을 먹고, 나주에서는 완전 숙성된 것을 먹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그 당시 흑산도에서 목포를 거쳐 나주에 도착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홍어가 가장 알맞게 숙성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흑산도 사람들이 굳이 삭힌 홍어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홍탁삼합 (洪濁三合)

삭힌 홍어는 씹을수록 제 맛을 낸다. 홍어의 제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입에 넣고 얼른 삼키기 보다는 암모니아 향이 은근히 올라올 때까지 꼭꼭 씹어 주는 게 좋다. 그렇게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찰진 흑산 홍어의 씹는 맛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코끝이 찡하고, 다음엔 입 안이 상쾌하고, 마지막으로 청량한 맛을 내는 홍어. 그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홍어의 전설을 목도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흑산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